피아노를 팔았다.
거의 20년을 손도 대지 않았으니 물건의 효용성을 따지자면 진즉에 팔거나 누구에게 주어버리거나 했어야 했다.
부모님 집 거실 한편에서 그냥 그렇게 있던 피아노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좀 더 작은집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이제 거기에 더 있을 수 없었고, 나는 피아노를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파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중고상 아저씨가 제시한 가격은 너무 터무니없었다.
‘요즘은 큰 피아노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요.’라고 아저씨가 말했다.
가격을 더 쳐주었으면 기분이 나아졌을까?
피아노는 초등학교 2학년 어느 겨울밤에 우리 집에 왔다.
피아노를 배운 지 1년이 지났을 무렵이었고, 엄마는 피아노를 사기에 우리 형편이 어쩌니.. 같은 넋두리는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참 후에 피아노 같은 물건을 아이에게 사주려면 몇 날 며칠 고민을 해야 하고, 그 비용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라서 엄마가 된 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중고상 아저씨가 피아노를 얼마에 가져가든, 이 피아노에는 엄마가 보냈을 고민의 시간이나 어렵게 사준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딸을 바라보았을 마음, 집의 일부처럼 내 유년의 기억을 지키고 있었던 물건이라는 것 같은 내 아쉬움을 달랠만한 가격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저씨가 제시한 가격은 정말 터무니없었다.
‘좀 더 해주시면 안 돼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거라..’ 나는 안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 한번 더 물었다.
‘요즘은 디지털도 흔하고 새것도 예쁘게 나와서요... 내가 가지고 와도 어차피 개척교회 같은 데로 가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좋은데 쓰신다고 생각하시고.. ’
사실일지 아닐지도 모를 아저씨의 말을 듣자, 피아노가 나를 영원히 떠나도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져서,
나는 순간 아저씨에게 ‘돈 따위는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가시라’ 말할 뻔했다.
그 말을 참은 건 지금도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제 피아노는 내 통장에 숫자로 남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갔을 때 한번 쳐보고 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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