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9년이 되는 날이다.
부모님은 아들이 없이 딸만 셋을 두셨다. 나와 여동생 둘.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3년은 아버지 집에서 4번째는 추모공원에 제사상을 주문해서 제사를 지냈다.
다섯 해 째는 막내가 아무도 안 먹고 힘 만드는 그런 거 말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 한 두 가지씩만 서로 준비하자고 해서 그렇게 지냈다.
그랬더니 "무슨 전을 부칠까, 무슨 나물을 할까" 를 고민하지 않고, "엄마가 뭘 좋아했더라"를 고민하는 시간이 생겼었다. 아침 일찍부터 둘째는 엄마가 좋아하는 중국전병을 산다고 명동 바닥을 다 뒤져서 전병을 구해왔고,
막내는 엄마가 병원에서 제일 먹고 싶어하던 멜론과 거봉을 사고, 나에게서 엄마가 매떡을 좋아하는지 찰떡을 좋아하는지를 들었다.
이후로는 항상 그런식으로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챙겨 추모공원을 찾았다.
추모공원에서 지내다 보니 추모공원 운영시간에 맞춰야 했고, 보통 11시쯤 만나서 간단하게 우리들만의 추모식을 한 뒤 근처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식이다. 평일이면 우리 셋과 아버지만, 어쩌다 주말이면 사위들과 아이들도 함께 갔다.
막내 제부는 우리가 그렇게 엄마의 기일을 보내는 것을 항상 아쉬워했다.
항상 우리집에서 지내면 어떠냐는 얘기를 했다.
올해도 막내를 통해 이제 우리 집에서 모시면 어떻겠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냥 음식은 사오고 그릇만 몇 개 더 설거지 하면 되잖아..라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외로울 아버지를 생각해주고,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본인을 사위들 중 제일 예뻐하셨노라고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게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막내에게 말했다.
그 음식을 사와도, 날짜에 맞게 수량이랑 종류 계산해서 주문하고 찾아오고도 다 일이고, 상 차리고 그 "그릇 몇 개만 더" 치우는 것도 다 누군가의 노력이다.
엄마는 외동딸로 자라 장손에게 시집을 왔다. 할아버지는 양자였고 물려받은 큰 재산도 없었다. 홀 아버지에 6남매의 지난한 살림을 아버지는 월남전 다녀와 땅도 사고 서울서 돈 벌어 보탰다. 그 와중에 설 추석을 제외하고도 매년 제사를 아홉 번이나 지냈다.
음력 7월에는 이틀 연속 제사가 있는 날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가 제사를 이제 줄이자고 했을 때도 엄마는 줄이지 않았다. 장손이 아들도 없는데 내가 마지막까지 도리를 하겠다고 우겼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식사를 마치고 난 상에 앉아 조기 머리를 뜯으며 엄마는 '이 조기머리 뜯는 맛에 맏며느리 하지 뭐야.'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없는 말을 했었다.
엄마는 작은 어머니들 보다 내가 도와주는 것을 편하게 생각했다. 중학교 때인가 엄마를 도와 전을 부치고 있었는데 엄마가 대뜸,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왠지 너 시집가서도 전 부칠 것 같아'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나는 손위 시누이가 넷 있는 장손과 결혼했다.
막내네 집에서 엄마 기일을 챙기는 것이 사위집에서 제삿밥 얻어먹는 것 같아서 싫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깟 제삿밥 아무데서나 먹음 어떻고, 무엇을 먹으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나는 엄마가 곱게 기른 딸들이 당신 제사 준비한다고 힘든 걸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엄마를 정말 위하는 건, 나와 내 동생들이 어디서든 귀하게 대접받고, 누릴 수 있는 것 다 누리고, 사랑 듬뿍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차리는 것보다, 엄마 좋아하는 커피랑 도넛 같은 것들을 챙겨서 소풍 오듯이 한 번씩 들러주고, 꼭 들르지 않아도 엄마가 좋아했던 음식을 보거나 엄마가 좋아했던 영화를 보거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보라색 꽃을 보면 엄마를 떠올리는 그런 딸들이 기를 바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기일에는 초등저학년 둘이 원격수업으로 집에 있는 막내를 제외하고 아버지와 나, 둘째만 추모공원을 찾았다. 음식 반입이 안 되는 아쉬움을 달러려고 늘 그렇듯 그곳에서 파는 꽃다발을 사려고 30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꽃다발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했다. 나는 내심 14번이 맘에 들었지만 아버지 맘에 드는 것을 고르시라 했다.
아버지는 "14번으로 하자" 고 하셨다. 동시에 둘째가 "어! 나도 14번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 라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보라색 꽃을 좋아하고 화원에서 자라는 꽃 보다는 야생화를 좋아한다. 14번 꽃다발 같은.
기일은 결국 이런것 아닐까. 떠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웃고 또 조금 슬프고 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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