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각 16

엄마의 기일

오늘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9년이 되는 날이다. 부모님은 아들이 없이 딸만 셋을 두셨다. 나와 여동생 둘.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3년은 아버지 집에서 4번째는 추모공원에 제사상을 주문해서 제사를 지냈다. 다섯 해 째는 막내가 아무도 안 먹고 힘 만드는 그런 거 말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 한 두 가지씩만 서로 준비하자고 해서 그렇게 지냈다. 그랬더니 "무슨 전을 부칠까, 무슨 나물을 할까" 를 고민하지 않고, "엄마가 뭘 좋아했더라"를 고민하는 시간이 생겼었다. 아침 일찍부터 둘째는 엄마가 좋아하는 중국전병을 산다고 명동 바닥을 다 뒤져서 전병을 구해왔고, 막내는 엄마가 병원에서 제일 먹고 싶어하던 멜론과 거봉을 사고, 나에게서 엄마가 매떡을 좋아하는지 찰떡을 좋아하는지를 들었다. 이후로는 항상 그런식으로 ..

소소한 생각 2020.10.16

산듸골촌두부_설악IC 맛집

추석 다음 날, 새벽에 잠이 깬 저희 부부는 무작정 차를 몰고 강원도로 향했어요. 요즘 머릿속이 복잡하고, 이것저것 해결해야 되는 일도 많고.. 급 여행 모드.. 매일 집 앞 공원에서 맞이하던 아침해를 오늘은 강변북로에서 맞이합니다. 이 집은 재작년인가.. 어머님 모시고 1박 2일로 강원도 여행을 갔었는데 집으로 오는 길이 너무 막히고, 배는 고프고 해서 남편과 무작정 설악 IC로 들어갔다가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맛집 포스를 느끼고 들어간 뒤 애정 하게 된 곳이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내부도 ㅎㅎ) 그냥 작은 마을 읍내에 있는 식당이에요. 주메뉴는 청국장과 순두부입니다. 저희가 간 날도 이른 아침이었는데 저희 가 자리에 앉고 연배가 약간 있으신 부부 한쌍, 또 저희와 비슷한 연령대의 부부 한쌍이 들어오셨..

베란다 텃밭 근황 _반려식물들 근황

작년까지 4년째 가꾸던 주말농장을 그만두었었다. 텃밭은 정말 너무 좋은데, 매년 8월에 해외출장이 잡혀있어, 한여름 뙤약볕에 잡초와 물 주기 그리고 수확에 가장 바빠야 할 때 돌보지 못하니 출장을 다녀오면 작물들은 다 물러있거나 터져있거나 아니면 잎만 자라 내 텃밭만 정글이 되어있기 일쑤였다. 원래 올해는 브라질에 3주짜리 (어쩌면 4주가 될) 해외 출장이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텃밭을 포기했었다. 그때는 몰랐지.. 코로나 때문에 해외출장뿐 아니라 아예 수입이 0이 되는 백수가 될 거라는 걸. 코로나가 길어질 꺼라는 걸 알게 된 후 집에 있던 모든 화분을 분갈이하고, 몇몇을 베란다로 옮겨 베란다 텃밭- 내 주말농장에 비교하면 초미니- 을 시작했다. 시기도 한참 늦어서 뭘 심어도 제철이 아닌 텃밭. ..

소소한 생각 2020.09.07

요가하니까 살 빠지냐고 그만 물어봐 줘

#요가해서살빠지는건아닌듯 #덜먹어야빠진다는진리 #나만그런건지도 요가를 시작한 지 이제 석 달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요가도 근력이 필요한 동작이 많은 건 사실이라, 살이 빠지기도 하겠지만 요가 석 달째 접어들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진실. 먹는 게 소비하는 것보다 많으면 살은 빠지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거잖아 ㅎㅎ 솔직히 요가 처음 시작했을 때, 쪼오끔 기대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살도 좀 빠지지 않을까? ​ 요가를 아주 처음 해보는 건 아니었고, 몇 년 전인가,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던 요가를 몇 번 갔었는데 엄청 무슨 동작이 막 휙휙 지나가고, 나는 하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어쩌다 비슷한 동작이 되었나 싶으면 너무 힘들고, 요가라는 게 뭐 벌 받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몇 번 가지도 못했..

소소한 생각 2020.08.03

꼬물꼬물 바느질

몸이 안좋다고 놓고 있던 일도 다시 잡아보고,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버스 지하철도 타보고,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왔다. 집에 돌아와서 한동안 손대지 않던 천들을 꺼내어 새로 산 책 커버를 만들었다. 5월 답지 않은 서늘한 날씨. 처음에는 삐뚤기만 하던 박금질이 다시 익숙해 질 때 쯤. 조금 열어둔 창으로 밤바람이 들어오고 라디오에서 고등학생이 중학교때 선생님에게 보내는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있으니 문득 행복하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일이 해결돼?' 라고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재하는 서울에서 두망치듯 옛집으로 돌아와 바쁜 날을 보내는 혜원에게 말했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지는 않지. 하지만 살다보니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냥 해결되지 않은채로 다시..

소소한 생각 2020.07.30

피아노를 팔았다

피아노를 팔았다. 거의 20년을 손도 대지 않았으니 물건의 효용성을 따지자면 진즉에 팔거나 누구에게 주어버리거나 했어야 했다. 부모님 집 거실 한편에서 그냥 그렇게 있던 피아노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좀 더 작은집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이제 거기에 더 있을 수 없었고, 나는 피아노를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파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중고상 아저씨가 제시한 가격은 너무 터무니없었다. ‘요즘은 큰 피아노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요.’라고 아저씨가 말했다. 가격을 더 쳐주었으면 기분이 나아졌을까? 피아노는 초등학교 2학년 어느 겨울밤에 우리 집에 왔다. 피아노를 배운 지 1년이 지났을 무렵이었고, 엄마는 피아노를 사기에 우리 형편이 어쩌니.. 같은 넋두리는 하는 사람이 아..

소소한 생각 202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