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각

피아노를 팔았다. - 2014년 7월 30일 페북글

Planet One 2022. 7. 30. 10:26

피아노를 팔았다.

거의 20년을 손도 대지 않았으니 물건의 효용성을 따지자면 진즉에 팔거나 누구에게 주어버리거나 했어야했다.
부모님 집 거실 한켠에서 그냥 그렇게 있던 피아노는, 아버지가 이사를 가시면서 이제 거기에 더 있을 수 없었고, 나는 피아노를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파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중고상 아저씨가 제시한 가격은 너무 터무니없었다.
‘요즘은 큰 피아노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요.’라고 아저씨가 말했다.
가격을 더 쳐주었으면 기분이 나아졌을까?
 
피아노는 초등학교 2학년 어느 겨울밤에 우리 집에 왔다.
피아노를 배운지 1년이 지났을 무렵이었고, 엄마는 피아노를 사기에 우리 형편이 어쩌니..같은 넋두리는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참 후에 피아노 같은 물건을 아이에게 사주려면 몇날 며칠 고민을 해야 하고, 그 비용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라서 엄마가 된 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중고상 아저씨가 피아노를 얼마에 가져가든, 이 피아노에는 엄마가 보냈을 고민의 시간이나 어렵게 사준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딸을 바라보았을 마음, 집의 일부처럼 내 유년의 기억을 지키고 있었던 물건이라는 것 같은 내 아쉬움을 달랠만한 가격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저씨가 제시한 가격은 정말 터무니없었다.
 
‘좀 더 해주시면 안 돼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거라..’ 나는 안될꺼라는 것을 알면서 한번 더 물었다.
‘요즘은 디지털도 흔하고 새것도 예쁘게 나와서요... 내가 가지고 와도 어차피 개척교회 같은 데로 가게 될 거에요.. 그러니까.. 그냥 좋은데 쓰신다고 생각하시고.. ’
 
사실일지 아닐지도 모를 아저씨의 말을 듣자, 피아노가 나를 영원히 떠나도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져서, 나는 순간 아저씨에게 ‘돈 따위는 필요없으니 그냥 가져가시라’ 말할 뻔 했다.
 
그 말을 참은 건 지금도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제 피아노는 내 통장에 숫자로 남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번에 갔을 때 한번 쳐보고 올걸..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