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여사레시피/한식

바다장어 (붕장어)구이

Planet One 2021. 4. 8. 10:18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받는 사람이 나였고, 우리 집 주소인데 누가 보냈는지 알 수는 없고 뜯어보니 손질된 바다장어가 들어있다. 


바다장어를 처음 먹어본 것은 아마도 국민학교 5학년즈음인가. 그해 할아버지 생신을 부산 작은아버지 댁에서 보내기로 했던 해다. 생신 전날 잠이 들었다가 밤중에 잠깐 잠이 깨 거실로 나갔더니 어른들이 술 한잔을 하고 계셨다. 

눈을 비비는 나에게 작은아버지는 엄청 귀하고 맛있는거라고 회 한 점을 쌈에 싸주셨다. 잠결에 우물거리는데 가시가 한가득이다. 그래서 못 먹겠다고 뱉어냈다. 그 회가 바로 붕장어, 아나고라고 불리는 바다장어다. 


그 이후로 아나고는 무조건 패스, 구워도 패스. 그러니 내가 주문했을 리 없다. 

동생들 카톡방에 올렸더니 창원이 고향인 막내 제부가 보냈단다. 친구가 새로 일을 시작했는데 좀 도와줄 겸, 술 좋아하시는 큰 처형네 안주도 될 것 같아 보냈단다. 항상 고마운 막내 제부. 

고마운데.. 큰 산이 남아있다.  유튜브를 뒤적여본다. 잘 모르겠다. 네이버도 뒤져본다. 흠.. 

뭔가 정형화된 방법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손질을 하다 깨달았다. 자주 먹어보고 그 맛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배송된 손질 장어를 그냥 깨끗하게 씻어서 먹는 것 같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최선을 다해 다양한 방법으로 손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후자였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다.  


바다장어 손질 방법 

배송된 장어는 그냥 보기에도 너무 싱싱했다.

손질이 말끔하게 되어있어서 앞서 말한 데로 잘 씻어서 바로 숯불에 구워도 맛날 듯.

무려 자연산. 바다장어는 양식이 안 된다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숯불도 없고, 일단 바다장어에 대한 썩 좋지 않은 기억도 있어서 열심히 손질을 해보기로 한다. 

일단 장어들을 꺼내 싱크대 안에 가지런히 눕힌다. 그리고 머리 쪽 (머리는 없지만 꼬리의 반대쪽이 머리겠..) 에서 꼬리 쪽으로 칼을 45도 각도로 세워 진액을 긁어낸다. 

칼에서 보는 것 같이 하얀 진액이 나온다. 비린내는 주로 저 진액과 피에서 나는 거라는데 피는 1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진액이 한 번에 싹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 따듯한 물을 부으면 진액이 잘 떨어진다고도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해봤는데 큰 차이 없었다. 

 

보통은 이렇게 하고 여러 번 헹구어서 조리한다. 하지만 나는 해산물 초심자고 생선은 민물장어와 회정도 먹을 줄 아는 고등학생이 둘이나 있다. 이것이 바다장어지만 바다장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줘야만 했다. 

이후 과정은 귀한 음식 잘 못 먹어 본 초심자를 위한 과정이다. 

한 번씩 진액을 긁어낸 뒤 밀가루와 굵은소금을 넣고 (대략 밀가루 한 컵 정도에 소금 한큰술-양에 따라 가감한다) 바락바락 낙지나 오징어 세척하는 느낌으로 치대 줬다. 물에 잘 헹구어 주고 소주와 식초를 섞은 물에 헹군 후 이 과정을 반복했다. 두 번째 헹굴 때는 따듯한 정도의 온도의 물로 헹구어 주었다.

그 후에도 아직 미끄러운 느낌이 있어 일회용 수세미로 껍질 쪽을 문질러 보송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직 갈길이 먼 느낌.. 

일회용 수세미까지 등장하고 나서 마음에 드는 감촉 (?) 을 얻을 수 있었다. 여러 번 헹구어 물이 빠지도록 잠시 받쳐두었다. 

싱크대에 이렇게 두었더니 물마시러온 고등이 잠시 기절했었다는 .. 

 

중요한 과정

이제 장어에 칼집을 넣을 때다. 바다장어는 가지가 많다. 그냥 엄청 많다. 핀셋으로 빼거나 하는 방법도 있다는데 한두개 빼는게 아닌지라 나는 그냥 칼집을 내기로 했다. 장어를 가로로 놓고 칼을 안쪽 당기거나 바깥쪽으로 밀거나 편한데로 촘촘히 칼집을 넣어준다. 약간 기술이필요하다. 칼에 뼈 잘리는 느낌이 온다. 슥슥슥슥.  많이 넣을 수록 좋다. 

 


바다장어 구이 레시피 

사실 레시피는 없다. 양념장이 들어있었는데 찍어 먹어보니 너무너무너무 맛있어서 이 양념을 사기 위해 바다장어를 주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재료: 바다장어, 양념장, 참기름, 식용유, 소금 (끝)


1. 손질된 장어를 프라이팬 사이즈에 맞게 자른다. 나는 장어가 커서 3 등분해야 했다. 

2. 참기름과 식용유를 1:1로 섞어 유장을 만든 다음 장어의 앞뒤에 골고루 발라 재워둔다. 오래 재울 필요는 없다. 

3. 중불에 장어를 껍질부터 굽는다. 소금을 솔솔 뿌려가며 구워준다. 구우면서 장어가 바깥쪽으로 오무러지기 때문에 숟가락 같은 것으로 눌러가면서 구워도 좋다. 

초벌된 장어 

4. 이대로 속까지 익도록 구우면 장어 소금구이다. 요대로도 사실 맛있다. 하지만 우리는 초심자. 양념구이로 한다. 

5. 초벌 된 장어에 양념을 골고루 발라주고 약불에 구워준다. 잘못하면 탄다. 살살 뒤집 뒤집. 구우면서 양념을 덧발라주면 더 예쁘고 맛있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6. 다 구워진 장어를 접시에 예쁘게 담고 쪽파 (그냥 파, 혹은 부추 아무거나 파란거) 와 깨를 뿌려 낸다. 

완성샷

 

초록병을 부르는 비주얼

 

7. 남은 장어는 다 구워서 한 번에 먹을 만큼 소분해서 냉장 또는 냉동한다. 양념장을 남기면 좋다. 

 


냉정한 자체평가

남편: 좋은 안주가 그런지 술을 먹었는데 아침이 개운하다 

딸: 맛있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식감이 아님. (원래 생선 못먹음)  

아들: 아직 시식전

나: 힘든 보람이 있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상당히 맛이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익숙하지 않아서 손질하는데 고생했을 뿐 익숙하다면 저렇게까지 손질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엔가 있을 바다장어 초심자들을 위해 일단 기록을 남겨두었다. 사실, 너무 열심히 해서 내가 기록을 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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